과음한 다음 날 종종 들려오는 말이 있습니다. “아, 어제 필름 끊겼어.” 어제의 기억이 희미하거나 아예 사라져버린 경험…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겪어보셨을 텐데요. 그런데 과연, 우리의 ‘의식‘은 어디에 존재하기에 알코올 몇 잔에 그렇게 쉽게 흔들리는 걸까요? 오늘은 ‘필름 끊김‘이라는 신기한 현상을 통해, 의식과 뇌의 비밀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의식은 뇌 어디에 있는 걸까?

의식은 참 신비로운 개념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고, 세상을 인식하고, 자신을 자각하는 이 모든 것. 하지만 놀랍게도 과학자들은 아직도 의식이 뇌의 정확히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의식은 뇌의 어느 한 부위만이 아니라 여러 영역이 동시에 협력할 때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전두엽(생각과 판단을 담당), 측두엽(기억을 저장), 그리고 해마라는 부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하죠. 이들 부위가 서로 긴밀히 소통할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나’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과음은 뇌를 어떻게 망가뜨릴까?

술, 특히 알코올은 뇌를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인 GABA(감마아미노부티르산)를 증가시키고,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의 작용을 억제합니다. 쉽게 말해, 뇌의 활동을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만들고, 사고능력과 조정능력을 떨어뜨리게 하죠.

이 과정에서 특히 큰 타격을 받는 부위가 바로 해마입니다. 해마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데 꼭 필요한데, 알코올이 해마의 신경세포 사이 연결을 방해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마시면, 아예 그 순간 자체가 뇌에 저장되지 않아 다음 날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이 나지 않는 ‘필름 끊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흥미롭게도, 이때 일어난 일들은 아예 기록 자체가 없기 때문에 ‘생각해내려고 애써도’ 무용지물입니다. 테이프에 녹음하지 않은 소리를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저장되지 않은 기억은 복구할 수 없습니다.

혈뇌장벽(BBB)과 알코올의 관계

혈뇌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은 혈액 속의 해로운 물질이 뇌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주는 일종의 ‘방어막‘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알코올은 이 혈뇌장벽을 쉽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알코올 분자는 크기가 작고 지용성이기 때문에 BBB를 빠르게 넘어 뇌 조직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이로 인해 해마뿐 아니라 뇌 전반의 신경세포 활동이 억제되거나 과도하게 자극받게 됩니다. 단기 기억 상실뿐 아니라 판단력 저하, 감정 기복, 운동 능력 저하 등의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만약 혈뇌장벽이 손상되거나 약해진 상태라면, 알코올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더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혈뇌장벽의 기능 약화는 신경염증과 신경퇴행성 질환 위험도 높일 수 있으므로, 과도한 음주는 신중히 관리해야 합니다.

왜 어떤 날은 끊기고 어떤 날은 아닐까?

단순히 술의 양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술을 마시는 속도, 함께 먹은 음식, 개인의 체질, 그리고 스트레스 상태나 수면 부족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빠른 속도로 많은 양의 알코올이 혈액에 들어가면 해마가 순식간에 제 기능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반면 천천히, 음식을 곁들여 마시면 흡수 속도가 늦어지고 뇌에 가해지는 충격이 덜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날은 꽤 많이 마셨는데도 기억이 또렷하고, 어떤 날은 몇 잔에 바로 필름이 끊기는 차이가 생기는 것이지요.

또한 스트레스나 수면 부족으로 뇌가 이미 피로한 상태라면, 술이 촉매 역할을 하여 훨씬 쉽게 의식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필름이 끊기는 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치매와의 위험한 연결고리

가끔 “필름 끊긴 거야, 별일 아니야”라고 웃어넘기기도 하지만, 사실 필름이 끊기는 것은 뇌 입장에서 보면 ‘일시적인 손상‘에 가깝습니다. 해마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것은 단기적인 신경세포 기능 장애를 의미하며, 이러한 손상이 반복되면 뇌는 점차 회복력을 잃고 만성적인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주의할 점은, 과음이 반복되면 알코올성 치매(Alcohol-related Dementia)라는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알코올성 치매는 단순히 기억력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격 변화, 판단력 저하, 일상생활 수행 능력 상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노화 과정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뇌가 노화하는 셈입니다.

또한 알코올은 비타민 B1(티아민) 결핍을 일으켜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심각한 기억 장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 번 발병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따라서 가끔 즐거운 술자리는 괜찮지만, 자주 필름이 끊긴다면 이는 몸이 보내는 강력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이고 음주 습관을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기억과 인격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의식은 뇌 속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영역이 협력해 만들어내는 기적과도 같은 현상입니다. 그리고 알코올은 이 섬세한 조화를 순간적으로 깨뜨릴 수 있습니다. ‘필름이 끊긴다’는 것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우리 뇌의 경이로움과 동시에 그 연약함을 일깨워주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